어떤 사람이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번은 나는 어떤 책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나에 대해서는 내가 알 수 없지만 내가 나를 생각했을 때 딱 떠올릴 수 있는 책은 세 권이 있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양귀자 '원미동 사람들', 이문구 '우리 동네'
이 책들은 내 가치관과 감수성을 형성하는데 아주 많은 영향을 준 책들이다.
시기에 따라 선호하는 책 유형이 달라지기도 한다.
한 때는 자기계발서나 마음에 안정을 주는(?) 종류의 책들을 아주 싫어했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읽었던 책들 목록을 보니 거의 그런 종류이다.
내가 언제 이런 책을 읽었나? 나도 신기하다.
요즘에 내가 읽는 책은 나의 일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 4권의 책을 돌아가면서 보고 있는데, 두 권은 선물 받은 책이고 두 권은 내가 산 책이다.
선물로 받은 책들은 아이가 생기면서 태교 선물 겸 받은 것인데, 한 권은 과거의 나를 보여주고 한 권은 또 현재의 나를 보여주는 것 같다. 어쩌면 나보다 남들이 나를 잘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나와 맞는 책들을 만나게 된 것이 재미있고 신기하다.
내가 산 두 권의 책은 요즘 내 관심사 그냥 그 자체이다.
손열음, 하버노에서 온 음.악.편.지.
어제 도착해서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이 책은 예전에 같은 시험을 목표로 같이 공부하던 지인이 보내준 책이다. 책을 읽다가 책이 너무 좋다는 생각을 했는데, 예전에 내가 클래식에 관련된 책을 찾아보고 클래식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고 했다. 책을 보내준다고 했을 때 너무 기대되고 읽어보고 싶었다. 예전에 내가 클래식을 좋아했다는 것이 생각이 나면서 더 궁금해졌다.
그러면서 생각을 더 해봤더니, 내가 클래식을 좋아했던 시기는 고등학생 때와 취업 시험공부를 할 때였다. 사실 나는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영화도 잘 보지 않는다. 가슴이 말랑말랑 해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나는 이성과 감성이 잘 균형을 잡지 못하는 성격이다. 한 마디로 왔다 갔다가 안 된다. 한 번 가슴이 말랑말랑해지면 회복하기가 힘들다. 평소에 효율적으로 시간을 빡빡하게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 번 말랑해지면 돌아가기까지 최소 2~3일은 걸린다. 것도 아주 힘들게. 이런 성향 때문에 들었던 것이 클래식 음악인 것 같다. 아주 정제되어, 마음의 안정을 주면서도 내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런 나의 모습이 이 책을 만나게 해 주었다. 기대된다. 또 너무나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얘기라 더 기대되기도 한다.
줌파 라히리,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이 책은 동생이 선물해주었다. 평소에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인데, 미국 작가가 이탈리아어를 배워 이탈리아어로 쓴 책이라고 한다. 요즘 프랑스어를 배우는 내 생각이 나서 보내주고 싶다고 했다. 이 책은 지난주에 받아서 다 읽고 다시 한번 더 읽는 중이다. 동생은 아마 외국어를 배운다는 공통점 하나로 이 책을 보면서 날 떠올렸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고 '내 생각, 내 기분도 지금 이런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이건데'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외국어를 배우게 된 동기는 전혀 다르지만, 얻고 싶은 것, 목적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 작가의 경험을 통해서 내 삶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됐다.
작가는 이탈리아어를 배워야만 삶의 빈 공간이 채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벵골에서 태어나 영국을 거쳐 미국에서 살면서 벵골어도, 영어도 모국어가 아니라고 느끼며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있었던 것 같다. 작가가 사용하는 언어와 살고 있는 곳은 주어진 것이 아니면서 그렇다고 본인이 선택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항상 괴리감이 있었을 것 같다. 특히 직업이 언어와 자기 자신에 깊이 파고드는 작가이기 때문에 더욱더 알 수 없는 한계를 느꼈을 것 같다.
나는 이런 경험을 해보지도 않았고, 상상도 못 할 정도이지만 내가 주로 사용하는 언어와 다른 언어를 배워 사용함으로써 삶의 빈 공간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은 같다. 내 삶은 중간은 텅 빈 채 겉으로 성벽을 쌓아온 삶 같다. 이제 어느 정도 성은 완성되어 겉으로는 견고하고 보기에 좋지만 그 안은 비어있는 것이다. 그 안을 들여다본 순간 내가 내 삶을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 주변 환경이나 내가 기존에 이룬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프랑스 여행을 다녀오면서 프랑스어를 만나게 되었다. 작가가 이탈리아어를 '불안정한 도피처'라고 말한 것처럼, 프랑스어는 내게 도피처가 되고 있다.
이옥순, 무굴 황제 - 로마보다 강렬한 인도 이야기
요즘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이다. 인도의 무굴제국과 황제들 이야기는 처음 읽어본다. 어디서도 접해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다. 시사IN을 읽다가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PD님이 쓴 글에서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인도 역사 이야기가 재밌다는 소개에 이끌려 책을 사게 됐다. 이야기 자체가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인도에 대해서는 요가, 류시화, 영적인 나라, 힌두교 정도로 알고 있던 내게 무굴제국은 워낙 새로운 것이라 신선하다. 나는 주간지를 읽다가 이런 좋은 책을 알게 되면 주간지에 대한 신뢰가 더 커지고, 애정이 생긴다. 당분간은 시사IN을 계속 구독할 것 같다.
로알드 달, 찰리와 초콜릿 공장
프랑스어를 공부하면서 읽고 있는 책인데,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정말 내가 무지무지 좋아하는 책이다. 어렸을 때, 5학년쯤이었는데 이 책을 우연히 읽고 손에서 놓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세상이 있다니! 하면서 엄청나게 놀랐다. 그 뒤로 영화도 보고, 영어 공부를 할 때는 영어로 된 책도 보고, 지금은 프랑스어로 된 책을 읽고 있다. 프랑스어는 서툴러서 단어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읽게 되니 더 곱씹어보게 되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내용을 다 알면서도 찰리가 초콜릿 공장으로 언제 모험을 떠나게 될지 기대하면서 한 장 한 장 보고 있다. 이 책은 출산 전까지 다 읽는 것이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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